백두산 여행1(2017.7.29.-8.1)
우리민족의 시원인 백두산은 지리산의 천왕봉까지 능선으로 연결되는
한반도의 척추인 백두대간의 시발점으로 우리나라 모든 산줄기의 모산이고
중국 길림성쪽으로 뻗어나간 장백산맥의 시작이다.
또 백두산은 강력한 화산폭발로 정상부가 함몰되어 생긴
세계에서 제일 높은 칼데라호수인 천지를
2500미터가 넘는 16개의 외륜봉이 감싸고 있는
우리민족의 영산으로 한국인이면 누구나 가고 싶어하는 첫번째 산이다
2017년 7월 29일 인천공항에서 8시55분발 중국 연길행 비행기를 타고 백두산 여행길에 올랐다.
연길에서 점심을 먹고 도문으로 가서 두만강과 인접한 북한 마을을 구경하고
다시 용정으로가서 윤동주 시인의 대성중학교를 경유하여
백두산 아래 첫 동네인 이도백하에 도착하여 하룻밤을 묵고 다음날인 7월30일 서파관광을 하였다
이날 아침 6시30분에 이도백하를 출발,1시간 30분후 서파 주차장에 도착하여
셔틀버스를 타고 천지조망을 하고 다시 내려와 금강 대협곡과 왕지를 답사하였다.
그러나 고산화원은 가이드의 설명에 따르면 꽃피는 시기가 빨라져 7월 20일경에 폐쇄하였다고 하니
야생화 탐사에 대한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컸지만
천지조망이 이를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환상적이었다.
이처럼 천지조망이 좋은 날은 일년중 불과 30일 정도에 불과하다고 하니 엄청난 행운이 따랐던 것이다.
천지에 와서 천지를 못보고 간 사람이 천지에 있다는 가이드의 말이 다소 우스개 소리로 들리지만 일리있는 말이다
주차장에서 1,442개의 계단을 올라가는 사람들이 문자그대로 인산인해였다.
변화무쌍한 천지를 제대로 보기위해서는 순간의 기회포착이 중요함으로
체증이 극심한 인파사이를 뚫고 빨리 올라가느라고 애를 먹었다.
정상에서도 조망및 사진촬영이 어려울 정도로 초포화상태였다.
천신만고 끝에 빈틈을 뚫고 들어가 드디어 좋은 자리를 차지할수 있었다.
대자연의 진화로 생긴 위대한 걸작품 천지가 눈 앞에 확 펼쳐졌다.
감탄사만 연발할뿐 말문이 막혔다.
이때의 심정은 필설로도 형언할수 없는데 더 이상 무슨말이 필요하겠는가 !
꾸밈도, 뽐냄도 없이
원래의 모습 그대로를 얌전히 보여주고 있었다.
흰 뭉게구름이 천지수면에 투영되어 선명히 보일 정도로 시계조차 깨끗하여 더이상 좋을수 없는 완벽한 날씨였다
이 벅찬 감동의 순간을 영원화 하기 위하여 카메라 셔터를 연신 눌러댔다.
오르내리는 계단 양쪽에는 구절초,하늘 메발톱,비로용담등이 새생명을 잉태하기 위하여
얼마남지않은 뜨거운 햇살을 받으며 가는 세월이 아쉬운듯 화려한 자태를 맘껏 뽐내고 있었다.
왕지도 볼만한 연못이지만 그보다는 왕지가는 길주변의 수십만평의 넓은 초원에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여름 야생화가 단연 압권이었다.
하지만 개체의 다양성 측면에서는 고산화원에 미치지 못한게 사실이다.
7월31일날 새벽 4시에 일어나 5시에 아침대신 도시락을 받고 이도백하를 출발,
30분후 북파 주차장에 도착하여 천문봉,장백폭포,소천지,녹연담을 답사하였다.
천문봉 정상 바로 아래 주차장에 도착하니 이곳 역시 인산인해였고
주변은 만개한 두메 양귀비가 지천에 널려 있었다.
천문봉 정상쪽은 깍아지른 절벽으로 아차하면 추락위험이 매우 높은 곳이라 줄로 안전시설을 해놓았지만
사람이 너무 많으면 안전을 담보할수 없으므로 시차를 두고 입장을 시키고 있었다.
천문봉 정상에 이르니 아니나 다를까 천변만화하는 천지의 변덕스러운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운해가 천지를 열었다 닫혔다를 되풀이며 시시각각 다른모습을 연출하고 있었다.
이런 와중에 천지와 운해가 함께 어우러져 조화를 부리는 몽환적인 장면에 관광객들이 탄성을 자아냈다.
발 디딜틈이 없는 인파속에서 좋은 자리를 차지하는 것도, 변화무쌍한 천지의 한 순간를 촬영하는 것도
고대 그리스의 기회의신 카이로스의 시간처럼
순간순간의 기회포착이 결정적이었다.
한마디로 천문봉 정상은 카이로스의 시간이 지배하고 있었다.
천문봉에서 내려와 장백폭포 가는 길도 역시 사람들로 초만원이었다.
장백폭포 바로 앞에까지는 접근을 금지하고 있었고
오른쪽으로 올라가는 달문역시 출입을 원천봉쇄하고 있었다.
장백폭포 오고가는 길에는 집단 자생하고 있는 곰취들이 만발한 그야말로 곰취밭 일색이었다.
가이드의 설명에 따르면 폭포 아랫쪽 개울에서 솟아나오는 온천수들은 계속 뜨거워져 이제는 83도에 이른다고 한다
내가 2004년도 여름에 서파에서 북파까지 종주산행을 마칠무렵
너무 목이말라 천지로 내려가 천지물을 벌컥발컥 들이키고
달문,승사하를 경유, 장백폭포 옆으로 하산하여 근처 온천탕에서 목욕을 할때에
73도의 온천수를 목욕탕으로 끌어오면 수온이 6-7도가 내려간다고 했는데
이제는 83도라고 하니 지하가 계속 뜨거워지고 있는것이 분명한 바
징조가 삼상치 않는 것만은 사실이다.
각종 메스컴 보도와 전문가들에 의하면
백두산은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화산으로 폭발 징후들이 계속 나타나고 있지만
이를 막을수 있는 방법이 없을뿐만 아니라
폭발을 해도 속수무책이고 단지 발생한 대재앙을 빨리 극복하는것만이 인간이 할일이라고 하니
대자연의 처분에 모든 것을 맡기는것 이외는 달리 뾰쪽한 수가 없는 것이다.
인간의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다할지라도 대자연의 위력앞에서는 무력할수밖에 없는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천지자연에 대한 외경심을 갖고 항상 겸손한 자세를 잃지 말아야 할것이다.
그리고 정백폭포 왕복후 소천지 가는 숲길은 산책로서 안성맞춤이었고 박쥐나물 군락지였으며 키작은 만병초도 많았다.
북파 일정을 마치고 3시간 이상을 달려 연길로 돌아와 코스모 민속가든에서 저녁을 먹고 마지막 밤을 보냈다.
이번 서파와 북파 관광중 느낀것은
13년전 이도백하는 우리나라의 1960-70년대의 시골마을로서
숙박업소도 변변치 않아 큰방에서 수십명이 잠을 자고 화장실도 옛날 재래식 그대로였는데
이번에 가보니 관광 인프라를 갖춘 어엿한 중소도시로 발전을 하였고
연길도 그때는 한적한 중소 도시였는데 지금은 현대식 고층건물이 즐비한 대도시로 완전히 탈바꿈하였다.
중국이 급속도로 현대화,도시화가 진행되는등 비약적인 발전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할수 있었다.
특히 연길을 중심으로 용정,화룡등 연변일대는 우리민족이 집단 거주하고 있는 곳으로서
한민족의 서글픈 역사를 안고있는 이른바 한국인 디아스포라(diaspora)의 지역이다.
또 백두산여행은 일년중 3개월정도만 가능해서 그런지 몰라도
관광객들이 초만원이어서 줄서기 경쟁이 치열하여 상당히 힘들고 지칠수 밖에 없었다.
새벽잠을 설치며 왜 일찍 출발할수 밖에 없는지를 현장에서 저절로 깨닫을수 있었다.
안전사고 방지와 생태계 보호를 위하여 적정인원수를 안배하고 조절해야 하기때문에 조금만 늦게 시작하면
줄서서 기다리는 시간이 몇배로 길어져 하루의 일정이 한없이 늦어지기 때문이다.
종전에는 중국인 관광객들이 별로 없었으나 이제는 세개 최대 인구대국인 중국인들이
본격적으로 관광대열에 합류하기 시작하면서
관광객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였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현장요원들의 엄격한 통제로 정해진 길을 벗어날수 없서 길 옆의 야생화 촬영도 사실상 어려워서 조금 아쉬웠지만
식물 생태계 보호측면에서는 어쩔수 없다고 생각된다
특히 백두산은 약 2,000미터 안팎의 수목한계선 위쪽은 드넓은 초원지역으로 수많은 초본식물들이
봄,여름,가을에 맞춰 철따라 아름다운 꽃의 향연이 펼쳐지고
천지를 둘러싸고 있는 외륜봉들 역시 귀한 야생화들이 화려한 자태를 뽐내는 천상의 화원이다
백두산은 우리나라 최고,최대의 동식물의 보고이며 자연 식물원이고 천혜의 꽃밭인 것이다.
인위적인 손길,발길보다는 오직 자연선택에 맡기는 것이 백두산의 생태계를 보존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일 것이다
서파에서 바라본 천지와 주변 풍광
광각렌즈가 없어 천지전체를 담을수 없었던 것이 아쉬웠다.
멀리 좌측 뾰쪽한 봉우리가 북파 관광시 올라가는 천문봉이고 우측 튀어나온것이 북한의 장군봉으로 백두대간의 시발점이다
멀리 좌측으로 천지물이 유일하게 외부로 흘러나가는 달문으로 장백폭포를 경유하여 이도백하를 지나 송화강으로 흘러간다
중국쪽의 산봉우리들
북한쪽 모습
백두산 최고봉인 북한의 장군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