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원 한탄강 주상절리 잔도(2022.11.4)
철원군 갈말읍 드리니 매표소의 주차장에 자동차를 주차하고 매표소에서 표를 구입한후
한탄강변의 잔도를 따라 3.6킬로미터를 걸어서 순담계곡 매표소까지 갔다가
그곳에서 택시(9천원)를 타고 드리니 매표소 주차장으로 원위치했다
입장료(1만원)의 절반은 철원군 지역화폐로 되돌려준다
셔틀버스는 양쪽 매표소를 20분 간격으로 주말과 공휴일에만 운행한다고 한다
그리고 출발매표소와 편도및 왕복은 각자 임의로 선택할수 있다
잔도(棧道)는 원래 암벽에 구멍을 뚫어 지지대를 넣고 그위에 길을 만든것인데
중국에서는 진(秦)나라때도 이용했던 것으로 보아
전국시대는 물론이고 그이전에도 존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항우가 진나라의 함양궁을 점령하고 유방을 파,촉,한중의 왕으로 삼아
남정에 도읍하게 했다
관중과 한중을 오가는 길은 모두 험한 진령(친링)산맥을 넘어가야하는데
동쪽부터 자오도,당락도,포야도,진창도 등이 있었다
유방은 포야도(褒斜道)를 이용하여 남정에 간것으로 보이는데
심모원려의 책사 장량의 건의로 지나온 잔도를 불태우며 갔다
그러다가 불과 4개월후에 한신의 계책으로 진창고도를 이용하여 옹을 습격해서
진창에서 이들을 물리치고 이후 동으로 계속 진격하여 드디어 관중을 평정했다
유명한 고사성어(註)로 다시 얘기하면
유방의 소절잔도(燒絶棧道 잔도를 불사르고 끊어버림)와
한신의 명수잔도 암도진창(明修棧道 暗渡陳倉 겉으로는 잔도를 수리하는 척 하다가
몰래 진창으로 건너감)으로
관중(동서남북이 순서대로 함곡관,산관,무관,소관으로 둘러싸인 천혜의 요새)을 차지하여
수세에 몰렸던 유방이 항우에게 역전승 할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였고
결국은 초한전쟁의 마지막 결전인 해하전투에서 승리하여 한나라의 고조가 되었던 것이다
오늘날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찾는 중국의 황산등 매우 험한 명산에는
모두 잔도를 설치하여 안전하게 산행하면서 수려한 경관을 감상할수 있도록 했다
보기만 해도 아찔한 천길 낭떠러지의 중국 잔도를 보면
그들의 잔도 만드는 솜씨에 감탄사만 나올뿐이다
한탄강 주상절리 잔도는 생각보다 오르내리는 계단이 곳곳에 많이 있었고
평일인데도 수많은 인파가 몰렸지만
단풍이 다 시든 만추의 한탄강변 풍경은 쓸쓸함 그자체였고
푸른 강물은 아무일 없다는 듯이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하지만 한탄강 주상절리 잔도는 스릴 넘치는 아슬아슬한 길도 많고 주변 풍광과도 잘어울려서
가슴이 확 트이고 기분이 전환되는 최고의 산책코스로
각광을 받을수 밖에 없는 새로운 명소로 떠올랐다
註)소절잔도는 사기의 고조본기(유방에 대한 기록)에
거첩소절잔도,이비제후도병습지,역시항우무동의
(去輒燒絶棧道, 以備諸侯盜兵襲之, 亦示項羽無東意 지나갈때마다 잔도를 불살라 끊어버려
제후들이 몰래 습격하는것을 방비하고 또 항우에게도 동쪽에는 뜻이 없다는것을 보여주는것이다)
라고 기록되어있고
유휴세가(장량에 대한 기록)에는 장량이 이를 건의한것으로 나와있지만
명수잔도 암도진창은 사기의 고조본기와 회음후열전(한신에 대한 기록)은 물론이고
항우본기에도 모두 없는 내용이다
유방이 고도를 돌아와서 삼진(옥왕 장한, 새왕 사마흔, 적왕 동예) 등의 관중을 평정한것은
당연히 나오지만 잔도수리에 대한 기록은 전혀없다(정황상 그랬을 개연성은 인정되지만)
따라서 명수잔도 암도진창이 정사인 사마천의 사기에 없는데
중국 역사 지식이 일천한 사람으로서는
어떻게 유명한 고사성어가 되었고 또역사적 사실로 오인하게 되었는지는 정확히 알수가 없다
다만 역사적 사실에 상상을 가미해 역사를 윤색한것으로 유추할 뿐이다